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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대학’ 논란 속 역사적 의미 재조명
  • 등록일
    2026-04-13 10:20:00
  • 작성자
    이태연 기자
  • 조회수
    57
  • 배재대학교는 1885년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가 설립한 배재학당을 기원으로 하는 교육기관이다. 배재학당은 조선 제26대 왕 고종으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고 ‘인재를 기르는 학당’이라는 의미의 현판을 하사받으며 한국 근대 교육의 출발점 중 하나로 평가된다.

    1895년에는 영문학과, 국한문학과, 신학과로 구성된 대학부가 설치되며 고등교육기관으로의 성격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는 오늘날 배재대학교의 기원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아펜젤러는 해당 대학부를 기반으로 학교를 ‘Paichai College’로 발전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별세하면서 이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후 배재학당은 시대 변화에 따라 배재고등보통학교로 개편되었고, 이는 현재의 배재중학교와 배재고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동시에 배재대학교로 이어지는 고등교육의 흐름은 역사적 단절과 재구성을 거치며 이어지게 된다.

    배재대학교의 또 다른 축은 1956년 설립된 대전보육초급대학이다. 해당 기관은 유아교육 분야에서 강점을 지닌 교육기관으로, 이후 1977년 배재학당 재단과 통합되며 배재실업전문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이 통합은 두 기관이 모두 감리교 계열이라는 공통 기반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배재대학교는 배재학당 대학부와 대전보육초급대학, 두 축의 역사를 함께 계승하는 구조를 갖는다. 다만 학문적, 제도적 기준에 따라 ‘한국 최초의 대학’ 여부를 두고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최고 교육기관의 개념을 적용할 경우 조선시대 성균관의 계승 기관인 성균관대학교가 언급되며, 근대 대학 제도 기준에서는 1905년 설립된 숭실대학교, 학위 시스템 기준으로는 일제강점기 설립된 경성제국대학 등이 최초로 평가된다.

    이처럼 다양한 기준 속에서 배재대학교를 ‘최초의 대학’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근대 고등교육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 기관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는 분명하다.

    현재 배재학당 재단은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 등을 운영하며 교육 전반에 걸친 체계를 구축해왔다. 과거에는 초등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까지 포함한 폭넓은 교육기관을 보유하기도 했으나 일부 기관은 폐교되는 등 변화도 겪었다.

    배재대학교는 비록 ‘최초 대학’이라는 타이틀을 둘러싼 논쟁 속에 있지만, 한국 교육사에서 중요한 출발점 중 하나로서 그 정체성과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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